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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언제부터, 왜, 베개를 사용했는가?
입력시각 : 15-10-19 11:06
 

인간이 언제부터, 왜, 베개를 사용했는가?

 

김충배(xsinsa)

고려대학교 환경 건축공학과 졸업(1970년)

네이버 파워지식인 획득(2009년)

(사)한국수면산업협회 자문위원

㈜세리코 회장

 

베개의 역사는 인류 탄생과 같이 15만년전의 네안데르탈인의 무렵에 이미 사용되었던 화석이 있고 더욱 거슬러 올라가 400만년전이라고도 말하는 유인원 아우스트라로피테스크의 무렵에도 생활 상의 베개로의 것인지 제사적인 의미를 가진 베개인지 발굴된 두골아래에 베개라고 보이는 쇄석이 발견됐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가진 최초의 네안데르탈인은 35만년 전 유럽에 나타났으며, 13만년 전에 이르러서 완전한 네안데르탈인이 출현했다. 5만년 전 아시아에서 사라졌으며, 유럽에는 3만 3천년 내지 2만 4천년 전까지 살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최초의 인류로 여겨져 약540만에서 약150만년전에 존재했다고 생각되고 있는 이른바 화사형의 원인이다.  1924년11월에 남쪽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두엽뼈가 발견된 것이 최초이고 그 후 1974년11월24일에 에티오피아에서 전신 화석(전체의 약40%)가 발견 되었으며 거의 완전한 두개골과 전신 화석이 발견된 것이 2000년12월 에티오피아에서 였습니다.
 
네안데르탈인 또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nicolas olguin navarro)는 플라이스토세 중기인 약 20만 년 전에 출현해 약 3만 년 전에 사라진 사람속의 한 종족이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가까운 종족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1]에 이르기까지 분포하였다. 석기(石器)의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불을 이용하였으며, 매장의 풍습을 가지고 있어,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1856년 독일 프로이센의 뒤셀도르프 근교 네안데르(Neander) 계곡에서 인골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의 뇌용량은 현대인보다 커서, 남성의 평균은 1600㎤ (현대인 남성은 1450㎤)에 이른다. 그러나 두개골의 형상은 다르다. 얼굴이 크고, 특히 상안부(上眼部)가 앞으로 나와 있다. 이마가 낮고, 눈썹 부분이 돌출하여 안와상(眼窩狀) 융기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견치가 크고, 크고 튼튼하며 튀어나오지 않은 아랫턱을 가지고 있다. 남아있는 두개골의 형태로 추측한다면 얼굴 모양은 우락부락했던 것 같다.

 

또한 현생인류와 비교해서 목의 안쪽(上氣道)이 짧다. 그래서, 분절 언어를 발성하는 능력이 낮았을 가능성이 있다.
남성의 신장은 165cm 정도로, 체중은 80kg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성의 신장은 그보다 6cm 가량 작았다. 남성의 골격은 매우 튼튼하여 팔과 다리뼈가 여자보다 길고 굵었으며 어깨 폭도 여자보다 넓었다. 골격근도 발달하였다.


네안데르탈인은 무스티에 문화를 이룩했다. 제3간빙기의 고전적 네안데르탈인과 제4빙하기의 진보된 네안데르탈인으로 분류된다.


고전적 네안데르탈인은 동쪽은 이탈리아, 서쪽은 벨기에, 남쪽은 프랑스, 북쪽은 독일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두개골의 모양이 쐐기모양으로 튀어나와 쐐기모양 얼굴이라고 하며 모두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3간빙기의 네안데르탈인은 제4빙하기의 네안데르탈인의 조상으로 추정된다. 또한 제3간빙기의 것은 제4빙하기의 것과는 전혀 다르며 좀 더 진보된 1개의 하악골(下顎骨)이 마우엘 마을에서 발견되었다.


이 뼈는 원시적인 성격을 갖지만 인류의 뼈이다. 호모 헤이델베르겐시스는 원인류(猿人類)에 속한다고 하나 또한 네안데르탈인의 무리라고도 추정되고 있다.

 

그들은 동굴 속에서 살았으며, 동물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료도 죽였을 것으로 보인다. 죽인 사람의 뇌를 먹은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가 지닌 힘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네안데르탈인은 이미 죽은 자들을 매장할 때, 생전에 직접 사용했던 것을 함께 묻어주었다


어쨌든 베개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되었는지 라고 하면 확실히 진화과정에서 「네발로 다니던 인간이 직립을 해서 노동과 이동의 역할」을 위해서 양손은 노동을, 두 다리는 보행을 위한 것으로 발달 되었던 것입니다.
 
발달하면 할수록 무거워지는 뇌를 안정되게 지탱하고 움직임의 밸런스를 잘 취하기 위해서 완성되었던 것이 S 자 커브로 휘어져(경추는 C자형) 머리가 조금 앞으로 엉덩이는 뒤로 휘어진 것이 인간의 진화된 체형입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가장 편한 자세는 의자에 앉아 있는 상태가 아니면 벌렁 누어 잠을 자는 자세입니다.
 
매우 자연스럽게 서 있는 상태, 그 모습이 생리학적으로 봐도 어디에도 부담이 가지 않는 가장 편한 자세입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이나 잔디 밭에 누울 때 무심코 머리 밑으로 손을 대어 머리를 싣는 포즈를 취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누구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듯이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그것은 왜?


하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본능적으로 머리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좀 더 편한 자세와 좀 더 자연스러운 자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했을 때 인간은 몸도 마음도 최고로 기능합니다.
 
베개를 단순히 침구로서 의식하는 전부터, 경험적으로서 벌써 머리는 조금 높게 하는 편이 편하다고 말하는 것을 알고 있던 우리의 선조는 자연에 있는 돌이나 풀 그리고 나무로도 혹은 무릎베개라는 말이 있듯이 몸의 일부로도 뭐든지 사용해 머리의 위치를 보다 높게 확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사람마다 체형이 달라 본인에게 맞은 베개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 잠을 자기 위한 시작입니다.
 
 *베개는 언제쯤부터 사용되게 되었는가?


 1920년 남아프리카에서 출토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의 두개골 밑에는 쇄석이 깔려 있었습니다. 이 쇄석이 보다 편안하게 자기 위해서 베개로서 사용되었던 것인가 혹은 제사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가장 오래된 베개의 흔적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지금과 같은 베개가 사용하게 된 것은 12세기


 12세기에 시작한 십자군의 원정으로부터라고 합니다. 아랍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던 쿠션이 십자군에 의해 유럽으로 전달 되면서 유럽의 기후에 맞은 소재로 베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추위가 심한 유럽에서는 따뜻한 거위나 오리의 깃털을 사용해, 잘 때는 등까지 따뜻하게 베개로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침대 위에서 일어났을 때 몸을 받치기 위해서 베개를 쿠션 대신에 사용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베개를 사용한 것은,
백제 무영왕비[武寧王, 462 ~ 523]의 널 속에서 목침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 역시 매우 오래 된 것 같습니다.
이 목침은 통나무를 사다리꼴로 매끈하게 다듬고 긴 변의 중심 부분을 파내어 베기 편하게 하였고 전면에는 주색(朱色)을 칠한 위에 금박을 오려 붙여 귀갑문(龜甲紋)을 새기고 그 속에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겼으며
고려시대의 유물은 청자상감 운학모란문침(雲鶴牡丹文枕)이 있는데, 속은 비어 있고 양쪽 마구리에는 둥근 구멍이 뚫렸고
 또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수침(繡枕)의 형태에 대해서 흰 모시로 자루를 만들어 그 속을 향초로 채우고 양쪽 마구리는 실로 꽃을 수놓았는데, 무늬가 매우 정교하고 붉은 입으로 장식한 것이 연꽃 잎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베개는 기록으로 보아 오늘 날의 것과 별 차이가 없는데, 재질에 따라 수침 •퇴침 •목침 •도침 •곡침 •면침 등이 있었습니다.


 * 이웃 일본에서 지금과 같은 「평 베개」가 사용되게 된 것은
 메이지(1852.11.3 ~ 1912.7.30)부터 쇼와 초기(1925)에 이르러서 입니다. 그전까지는 원통형의 옷감에 겨 껍질이나 왕겨, 빨간 콩 등을 넣어 양단을 봉합한 「묶음 베개」가 주류였습니다.

 에도 시대 (1603년-1867년) 가 되자 다양한 머리 모양을 지키기 위해서, 작은 목상 위에 「묶음 베개」을 실은 「상자 베개」가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어느 베개도 머리를 빈다고 하는 것에는 편안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잘 때의 기분이 좋은 것으로는 없었던 것 였습니다.

 

 ●에어컨이 보급되어, 일년을 통해 쾌적한 환경에서 자는
 점차 현대에는 보다 기능적인 것을 요구하게 되었고 개인에게 대한 높이나 형태, 소재 등을 선택하는 것으로 질이 좋은 「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시장의 수요에 따라 점차 베개도 진화되고 있습니다.
 
●세계에는 그 지역의 기후나 역사를 반영한 다종 다양한 베개가 있습니다.
 고온 다습한 동남 아시아에서는 대나무 등으로 짠 베개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환기 성이 좋고, 서늘한 촉감이 기후에 맞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비는 베개 이외에도, 대나무를 약간 긴 원통형(죽부인)으로 짠 안고 자는 베개를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지역이 있고 일본에서도 찌는 듯이 더운 여름이 되면, 낮잠 용으로 비닐로 짠 베개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가정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도자기 베개나 한방약을 채운 베개 등이 있다
 역사가 긴 나라답게, 실로 다양한 베개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독을 가진 뱀이나 곤충의 자수를 한 베개를 아이의 부적에 사용하는 풍습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이 어린이용 부적 베개의 중앙에는 직경6~8cm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있습니다. 실은 이 구멍은 아이의 귀의 발달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최근에 사용되기 시작한 아기용의 「도너츠 베개」가 이 기원입니다.
 
●태국에는 작은 삼각형의 쿠션을 겹쳐 쌓은 베게도,
 삼각 베개가 있습니다. 옛날은 태국의 귀족이 낮잠 용으로 사용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널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베개 없이 자는 습관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산족이나 호주의 원주민 아보리니의 일부는 베개를 베지 않습니다. 이것은 귀를 지면에 붙여 자는 것으로 가까이 오는 사냥감이나 위험한 동물의 발소리를 자고 있을 때에도 소리를 듣기 위해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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