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賢들의 夫婦사랑
윤대현
오는 9월 19일은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다. 귀성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는 뉴스다. 이러한 명절이 되면 가장 고생이 많은 분은 각 가정의 주부님들이다.
추석 제찬 준비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온 귀여운 자녀들과 친척들을 맞이하고 보내는데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바쁘게 수고하는 주부들의 노고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잊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기회에 옛 선현들의 부부애와 절의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우리 나라의 유학계의 거두 퇴계선생과 권씨 부인에 대한 일화다.
퇴계 선생님의 21세에 김해 許씨를 부인으로 맞이 하였으나 둘째 아들菜(채)를 낳은 후유증으로 결혼5년만에 사별한다.
3년 후 1560년에 풍천면 가곡리 안동 권씨 四樂亭 權礩(권질)의 정신이 혼미한 따님을 부인으로 재취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때 禮安(예안)에서 귀양살이 하던 四樂亭이 이퇴계의 사람됨을 알고, “퇴계 자네는 내 집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하고 궁리를 해도 정신이 혼미한 내 여식을 누가 데려가겠는가, 자네 밖에는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이 죄인의 원을 들어 주게나” 하니 퇴계 선생은 그의 청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권씨 부인은 연산군 생모인 폐비 윤씨 사사(賜死) 사건 때 사약을 가지고 갔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 아버지 四樂亭도 귀향을 갔으며 숙부 권진 또한 기묘사화 때 비참하게 죽었고 숙모는 관비로 끌려가는 참극을 겪게 되어 정신이 혼미하게 되었는 바 그래서인지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을 집어 먹는가 하면 도포를 빨간 헝겊으로 기우는 등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해지는 것으로 봐서 퇴계 선생의 가정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퇴계의 제자 중에 완주(현 전주) 출신의 천산재 李成亭이라는 선비가 금슬이 좋지 않아 부인을 소박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한번도 직접 꾸짖는 일이 없었다. 어느날 李成亭이 고향을 다녀 오겠다고 하자 퇴계 선생은 ‘내일 아침 조반은 우리 집에서 먹고 가게’하여 다음날 李成亭은 퇴계 선생과 아침 상을 받게 된다.
음식은 산나물과 가지, 된장 뿐으로 너무나 초라한 음식이였다.
더욱 놀란 것은 예의 범절 등 여러면에서 정신이 혼미한 것 같은 권씨 부인을 보게 되었고,
‘아무리 성인 같은 퇴계지만 부족한 부인을 저렇게 소중히 여기고 아껴 줄 수 있을까’ 그는 불현 듯 자신의 부인을 연상하고 크게 뉘우치면서 길을 나서려 하자 퇴계선생은 편지 겉봉에
路次勿開看 (노차물개간 “도중에 뜯어 보지 말 것”) 다섯자가 적힌 편지를 주었다.
그 편지 내용은
“자네가 부인과 금슬이 좋지 않다고 하니 진실로 개탄할 일이다.
糟漮之妻不下堂(조강지처불하당)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부부의 근본 도리를 잊고 글 공부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天下의 이치는
•夫者倡婦者隨 (부자창부자수)남편이 노래하면 아내가 따라하고
•牡者馳牝者逐 (모자치빈자축)수소가 내달리면 암소가 뒤를 쫓고
•雄者妄雌者應 (웅자망자자응)숫컷이 울면 암컷이 순응하니
•是以聖人制言行 (시이성인제언행)무릇 성인은 언행을 다스려야 하며
•而賢人拘之 (이현인구지)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 취할 바이다
가정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성인의 말씀을 배운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깊이 명심하여 가정을 지키는 부인곁으로 기꺼이 돌아가길 바라네“ 하는 내용이었다. 그 후 그는 아내를 소중히 여겨 후손이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함형의 후손들은 430년이 지난 지금도 음력 섣달 초파일 퇴계선생의 기제사에 제찬을 마련하여 참례를 해오고 있다 한다.
糟漮之妻의 어원을 살펴보면 중국 後漢書宋弘傳에 광무제가 홀로된 누나(호양공주)를 위로해 주기 위해 송홍이라는 신하에게 호감이 있다 하며 그에게 뜻을 전하자 폐하 황공하오나 신은
•지휘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貴易交)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꾸는 것은(富易妻)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하지만(人情乎)
•가난하고 어렸을 때 사귄 친구를 잊어 버리면 안되고(貧賤之交不可忘)
•지게미와 쌀겨로 연명한 아내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糟糠之妻不可堂)
이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광무제는 송홍(宋弘)의 굳은 절의에 감복하여 그를 더욱 신망하고 존경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여기서 우리는 퇴계 선생께서 비록 부족한 아내지만 지극한 사랑의 실천으로 수범을 보여 조강지처를 소박하던 한 가정의 화목을 되찾게 하고, 후한 광무제 때 宋弘의 굳은 절의에서 조강지처의 어원을 찾을 수 있다.
화목한 부부간의 사랑의 수범은 추석절을 맞아 찾아 온 우리 자녀들에게 부부애의 소중한 본보기 교육의 기회가 아닐 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