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심안(心眼)이 열린다
신경림 시인(1936년생) : 충북 충주 출신으로 1956년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 ‘시골의 흙냄새와 땀냄새, 거기에 한(恨)과 의지가 짙게 풍긴 민중시’를 쓰며 사회가 불합리 부조리하게 흘러간다고 여기면 외면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시인 임.
<함께 나누기>
필자가 갈수록 글쓰기가 힘들다고 하니까 한 벗이 말했다. “야 너 뿐 아니고 나도, 다른 친구들도 나이 드니까 눈이 나빠졌다 하더라.”
이 벗은 제가 글쓰기가 어렵고 힘 들다고 한 말을 원시로 변해가는 뜻으로 오해한 것 같다. 이 시에서는 두 마디만 알면 풀린다. ‘별’과 ‘눈’.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고 한다.
그럼 그 전에는 별을 볼 수 없었다는 말이 된다. 이게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함축적인 의미로 접근해 봐야겠다. 그렇게 보면 눈과 별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나이 들면 신체의 눈 즉 육안(肉眼)은 닫히지만 마음의 눈 즉 심안(心眼)이 열린다는 뜻으로. 세상이 갈수록 탁해져 진짜 눈으로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나이 들면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는 뜻으로 풀이 된다.
다음 ‘별’도 마찬가지다.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빛난다고 하지만 아주 밝은 별 말고는 실제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바라보면 볼 수 있던 별 말고, 볼 수 없었던 '별'의 의미를 알아야겠다.
일상으로 초점을 맞추면 누구나 원하는 화려하고 빛나는 게 아니라 그냥 지나쳤던 것에서 찾아본다. 구석진 곳에서 어둡게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살아있는 약한 존재 들... 이렇게 눈과 별의 의미만 쫓아가는 작업을 했지만 사실은 이런 해석 없이 그냥 내게 다가온 소리로 읽음이 가장 좋다.
이 시는 그게 가능하다. 다음은 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나이가 드니 변하는 것들’ 몇 가지를 나열해 본다. 나이가 드니 허리가 굽어져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라. 그래 위만 볼 땐 몰랐는데 아래를 보니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
고개 들었을 땐 그의 화려한 얼굴만 보였는데 숙이니 발을 볼 수 있게 됐다. 그가 살아온 자취가 보이고, 현재의 모습도 보이고, 앞으로 걸어갈 길도 보이더라. 나이가 드니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 그동안 받는 사랑만 좋았는데 주는 사랑도 그에 못지않더라.
내 가족만 향하는 사랑의 길만 보였는데, 이웃으로 주변으로 멀리 확장해 가는 참 사랑의 길도 보이더라. 나이가 드니 현실의 소리는 잘 안 들려도 마음의 소리와 자연의 소리는 훨씬 더 잘 들리더라.
마음의 귀가 뚫리니 내가 부르던 소리보다 나를 찾는 소리가 더 많음을 알게 되더라. 나이가 드니 곧은 직선보다 느긋한 곡선이 더 좋더라.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 주변을 보게 되고 속도를 버리니 풍경을 얻게 되더라.
느긋해지니 보이지 않던 땅 위에 기어가는 작은 동물도 보이고, 바위도 꽃과 나무도 훨씬 잘 보이더라. 나이가 드니 이 모든 것의 중요성을 다 알게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