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과 진달래 꽃...
이영도 시인(1916년 ~ 1976년)
호는 ‘정운(丁芸)' 또는 '정향(丁香)’. 황진이 이후 최고 여성 시조 시인이란 평을 받음. 청마 유치환과 편지를 주고받는 정신적 사랑으로 수많은 연시(戀詩)를 낳게 만든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짐.
<함께 읽기> 지난달에 이어 4월의 시도 이영도 시인과 함께 함은 4·19 의거일이 얼마 남지 않아 일부러 골랐다. 이 시조의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읽으면 잘 이해 안 될 게다. 다행히 교과서에 실려 있어 배운 분들에겐 낯익겠지만.
이 시조는 4·19 혁명에 앞장섰다가 산화한 영령을 진달래꽃에 비유해 추모하는 작품이다. “그날 스러져 간 / 젊음 같은 꽃사태가 / 맺혔던 한이 터지듯 / 여울여울 붉었네” 민주주의를 외치던 청년들이 산화 한 ‘그날’이 되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진달래는 해마다 어김없이 바알갛게 피어난다.
시인은 그 ‘붉은 꽃사태’를 그날의 의로운 청년들의 표상으로 여긴다. 여기서 꽃 사태란 표현에 주의하면 그만큼 많은 젊은이가 희생됐다는 뜻도 담겨있다. 불의에 항거 하다 총탄에 피 흘리며 사라져간 젊은 넋의 한이 무더기 무더기 진달래꽃처럼 붉게 물들어 있는 형상으로 잘 그려 놓았다. “그렇듯 너희는 지고 / 욕처럼 남은 목숨” 원래는 나이 든 이가 먼저 죽고 나이 적은 이가 뒤에 죽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니 어른으로서 부끄럽다. 살아남아서 하늘 보기가 민망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갈 때도 그렇고...
이 부분을 그날 산화 한 숭고한 넋을 깊이 추모하며 그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말고, 살아있음이 욕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필자도 동의한다. 단순히 그냥 부끄러움만 느끼고 있다면 젊은이의 희생이 아무 의미 없이 되니까. “지친 가슴 위엔 / 하늘이 무거운데 / 연연(戀戀)히 꿈도 설워라 / 물이 드는 이 산하” ‘하늘이 무거운데’라는 시구를 통해 당대 현실이 그렇게 많은 젊은이가 피를 흘렸건 만 민주주의는 아직 오지 않은 암울한 시대임을 암시했다.
왜 그러면 꿈이 서러웠을까? 피를 흘렸으면 그 피에 대한 보상이 나와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니 그들의 꿈은 여전히 미완 인 채로 남았다는 뜻일 게다. 철마다 찾아오는 진달래꽃의 붉은 물결, 그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그 속에 젊은 피의 외침이 담겼음을 인식하라는 시인의 절규가 지금도 들려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