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지운다
허형만
수첩에서 이름을 지운다
접니다, 안부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전화번호도 함께 지운다
멀면 먼데로
가까우면 가까운데로
살아생전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얼마남지 않음을 몸이 먼저 아는지
안경을 끼고도 침침해지는데
언젠가는 어느 누구도 오늘 나처럼
나의 이름을 지우겠지
그사람, 나의 전화번호도
함께 지우겠지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때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될것이니라" -서산대사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게 되는 시간
내 그림자의 키는 얼마큼인지
발자국은 나란했는지
마음 한 자리에 지워지는 이름은 없는지...
다가올 시간들은
나란한 발자국을 남길 수 있게 되기를
둥근 마음으로 상처 보듬을 수 있게 되기를...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