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1979년 12·12 군사반란 재조명!!
영화 『서울의 봄』 흥행으로 왜곡된 과거사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 군사반란 발생 그날, 대한민국 운명이 바뀌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서울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것도 잠시 12월 12일,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반란을 일으키고 군내 사조직(하나회)을 총동원하여 최전선의 전방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인다. 권력에 눈이 먼 전두광의 반란군과 이에 맞선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비롯한 진압군 사이, 일촉즉발의 9시간이 흘러가는데...”
위의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어 개봉 12일 만에 400만 명이 넘는 관객 동원으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을 소개하고 있는 글이다. 감독은 영화적 재미를 주기 위해서 실제 사건에 약간의 허구를 가미하였고, 불필요한 송사를 피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가명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44년이 지나 2023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 영화 한 편의 흥행으로,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MZ세대를 중심으로 잘못된 역사에 대한 재조명 바람이 불고 있다.
12·12 군사반란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육사출신들로 조직된 「하나회」 핵심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등 반대세력을 체포한 사건이다.
그 후 정승화 대장은 이등병으로 강등되었고, 장태완 소장은 강제전역 후 아버지는 충격으로 사망, 1년 후 아들은 변사체로 발견되는 비운을 겪었다. 정병주 소장 역시 강제 전역 후 술에 의지하며 힘든 생활을 버티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으로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했다. 신군부 세력은 국가 핵심 거점과 언론을 장악하고 대통령을 협박하여 군권을 장악했다.
이후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에 저항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폭동으로 단정하고 계엄군을 보내 학살과 강경 진압으로 대응 했다.
아직까지 5·18 민주화 운동 학살과 강경 진압의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12·12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의 핵심자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사망한 이후 역사인식에 대한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최근에야 노태우 아들과 전두환 손자가 광주를 방문하여 5·18 희생자 묘지에 참배 후, 국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작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이 당시의 상황과 상당부분이 겹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한해가 될 것 같다.
/ 박정우 사회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