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막히기에 사람사는 세상이다.

3천만이 저마다 고향을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고 한다.
5천만이 안되는 인구의 절반도 훨씬 넘는 사람들이 며칠새 온 나라 길을 가득 메우고

약속이나 한듯 제 살던 곳을 찾아 잊고 지내던 불효를 조금이나마 사죄할까 부모품을 찾았다한다.
산소를 찾고 절을 올리는 건 사실 나중 일이다.

조상대하는 마음이 박해졌단 꾸짖기 전에 그래도 한가위 달맞이를 객지에서 한다는게 앞으로 일년내내 가슴에 징이 박힐 일이라도 되듯 고향 찾아 달려오는 이들이 기특하지 않는가?
길이 막히기에 여기가 사람사는 세상이다.

생각해 보자. 행여 내년 추석에라도 길이라는 길은 사방팔방 구명 뚫린 문풍지로 삭풍 드나들듯 

속 시원히 차를 몰고 갈 수 있다면 이거야말로 땅속에 계신 조상들이 벌떡 일어날 일이 아닌가?

서양에선 우리네 귀향길 풍경이 그저 신기한가 보다.

한국이란 나라 그 많은 사람들이 한날 한시에 일손을 멈추고 집문을 걸고 길채비를 하게끔 하는 그 힘이 무얼까?

그 힘이 부럽다는 이가 많다.

그 힘이 한국을 지탱한다고 믿고 그걸 배우자고 날아오는 이방인도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에겐 "사람 사는 맛" 이 있다. 서양에서 휴머니즘이다, 인본주의다 말들은 많아도 이는 물질 우선의 산업사회에서 황폐화돼 가던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수시적 방편에 다름 아니었다.

우리는 그 무슨 '주의' 나 '사상'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날 때부터 사람맛에 취해 살아왔다.
어머니의 사랑, 형제의 우애, 친구의 의리는 공장의 기계가 내는 굉음과 요즘 한창 잘나가는 컴퓨터 오락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삶의 봉우리가 된지 오래다.

그래서 나는 한국이 좋다.
마치 연어떼가 수만리 태평양을 건너 산란의 보금자리를 찾아오듯 그저 본능이 이끌어주는 대로 집을 찾고 고향을 찾는다.
1년 365일에 3백 몇십일은 타향을 고향 삼아 살고있다해도 그 3백 몇십일의 3백여일동안 집을 생각하지 않고 고향을 깡그리 잊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래서 해마다 귀성전쟁이라며 연일 떠들어대는 TV와 신문지상이 정치가들의 골프 회동이나 널뛰기 하는 주식 이야기로 채워질 정도가 되면 내 큰 즐거움 하나가 사라지고 말리라.

하지만 그런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추석날 성묘길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듯 파란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나서는 성묘길에 마침 장례길에 나선 영구차 한대를 만났다.
멀찌감치서 고인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잠을 깨울새라 조심스레 가고 있던 영구차를

우리차를 비롯해 이십여대의 성묘길 차량에 줄지어 뒤잇고 있었다.

30여분 뒤 마침내 영구차가 장지를 찾아 시골 셋길로 들어선다.
그때까지 뒤따르던 차들 중 단 한대도 추월하지 않고 묵묵히 행렬을 지어 달린 것이다.

언제부턴가 장지를 향하는 차를 추월하지 않는 예가 자연스러워졌다.
하향길에 그토록 교통 체증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보여준 사람다운 여유와 배려가 아름다왔다.
그래! 길이 막히기에 사람사는 세상 이닌가?